V90-LPS

언제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뮤지컬 피델리티의 LPS라는 손바닥만한 포노 앰프를 리뷰한 적이 있다. 어른 손바닥만한 기기로 D/A 컨버터들과 같은 섀시로 만들어 시리즈를 이루던 제품이다. 당시에 음색이 따뜻하고 온화해서 좋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리뷰할 제품이 V90-LPS이니 LPS의 후속 제품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사이즈는 기존의 LPS와 거의 비슷한데, 세로로 세우는 형태가 아니고, 작지만 일반 오디오처럼 가로로 놓는 스타일이다. 내부를 열어보니 IC와 칩 저항으로 질서정연하게 부품이 배치되어 있다. 심지어 앞에 청색의 전원 램프도 기판에 붙어 있는 칩 형태다. 전원은 별도의 어댑터로부터 직류 12V를 공급받는 구조다. 아주 작은 크기의 포노 앰프지만 MM은 물론 MC까지 직접 받을 수 있다. MM과 MC의 선택은 뒷면 푸시 스위치를 통해서 할 수 있다. 뒷면의 입?출력 단자 배치나 전면에 있는 온?오프 스위치 등 전체적인 레이아웃은 아주 좋은 편이다. 다만 사용하면서 느낀 유일한 단점은 그라운드 단자가 두터워서 일반 말굽식의 톤암 케이블 단자를 끼우기가 손쉽지 않다는 점 정도다.

우선 가라드 301에 세팅된 오토폰 SPU GTE 카트리지에 연결해서 들어보았다. 전작인 LPS보다 험과 노이즈가 줄어든 느낌이다. LPS가 소리는 따뜻하고 좋은데, 험과 노이즈가 있는 편이었는데, 이번 V90이 되면서 이 부분의 개선이 이루어진 듯하다. MC는 어떨까 싶어서 SPU 구형 카트리지에 바로 연결을 시도했다. 첫 번째 놀란 것은 생각보다 게인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스펙에 0.4mV(100Ω)로 되어 있어서 출력 전압이 0.3mV인 SPU 카트리지에는 볼륨을 상당히 올려야 제 소리가 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10시 근처에서 무난하게 적당한 음량이 나와 주었다. 두 번째 놀란 것은 MC임에도 험과 노이즈가 예상보다 적어서였다. 스펙에 표기된 70dB 이상이라는 S/N비가 허튼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MC에서 이 정도 수준의 정숙함은 어지간한 중급형 포노 앰프와 어깨를 겨루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전원부라고 딸려온 어댑터가 SMPS 방식이라 눈에 거슬려서 리니어 방식의 어댑터가 전압이 맞는 게 있는지 찾아보았다. 12V짜리 어댑터가 있긴 한데, 테스터기로 재보니 무려 15V의 전압이 나온다. 9V짜리 리니어 어댑터를 찾아서 전압을 재어보니 12.6V가 나온다. 그래서 음질 비교를 위해서 연결을 해보았다. 역시 리니어 어댑터를 전원으로 사용하자 고음의 산만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줄어들면서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좀더 음악적이고 아날로그다운 음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가 생겼다. ‘웅-’하는 험 소리가 더 커진 것이다. 리니어 어댑터의 전원 평활회로라고 해봐야 다이오드에 콘덴서 하나 붙인 게 전부다.

리니어 어댑터의 부실한 회로 때문에 맥류가 포함된 직류 전원이 포노 앰프에 공급되기 때문이다. SMPS는 수 kHz의 주파수를 정류하는 것이니, 당연히 120Hz의 낮은 전원 험이 없을 수밖에 없어서 험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리니어 어댑터의 음질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12V 리니어 어댑터에 정전압 IC가 추가로 붙어 있는 정전압 어댑터를 구해서 연결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SMPS에 비해 자연스러워진 중?고음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험도 SMPS 수준으로 거의 없으면서 말이다. 만약 구입한다면 정전압 어댑터로의 업그레이드는 필수적이 아닌가 싶다.

이 포노 앰프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장르의 음반을 걸어 보았다. 전반적으로 맑고 투명하다기보다는 따뜻하고 온화한 착색을 지닌 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포크의 보컬이나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 소리가 아주 좋게 들렸다. 맑고 투명한 느낌이어야 하는 피아노에선 상대적으로 약간 아쉬움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이온 보이쿠(Ion Voicu)가 연주하는 찌고이네르바이젠이나, 헨릭 쉐링(Henryk Szeryng)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는 적당한 온기와 호소력 있는 소리로 들려서 아주 좋았다. 반면에 잉그리드 헤블러(Ingrid Haebler)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나 실비아 케르센바움(Sylvia Kersenbaum)이 연주하는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는 특유의 투명함을 느끼기에는 다소 따뜻한 음색이었다.

대부분의 초보 아날로그 마니아가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V90-LPS의 이러한 튜닝은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하이엔드 제품도 아니고 입문자를 위한 포노 앰프라면 피아노보다는 현악기에 중점을 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실제로 하이엔드 포노 앰프도 대부분 현이 좋으면 피아노가 아쉽고, 피아노가 좋으면 현이 아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문용 포노 앰프들 상당수가 듣기 거북한 거친 고음과 험, 그리고 노이즈가 기본적으로 깔리는 것에 비하면 V90-LPS는 분명 한 수위의 음질이다. 그리고 피아노가 약점이라고는 해도 비슷한 등급의 포노 앰프들에 비하면 나으면 나았지 밀리지는 않는다. 간단하게 아날로그에 입문하고픈 마니아가 있다면 주저 없이 추천할 포노 앰프다. 특히 현악기를 좋아한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작아서 랙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자 미덕이다.